🌙 새벽 4시. 숙소
천장은 아무 말도 해주지 않는다.
주원은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눈을 감았다 떠보기를 반복했다.
이현의 손길.
그건 아주 잠깐이었는데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마를 훑던 그 차분한 손,
눈빛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던 그 얼굴.
'…이상한 사람이야.'
하지만, 그 묘한 안정감이 더 이상했다.
낯선데…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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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nock knock
"이주원 씨. 아침 식사 준비됐습니다."
이현의 목소리.
문 너머로 들려오는 낮고 차분한 톤은, 또다시 주원의 감각을 간질였다.
"...금방 나갈게요."
잠옷 바람으로 문을 열었을 때,
이현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밤새, 잘 주무셨나요?"
"…아니요. 그쪽 때문에."
"네?"
주원은 속으로 중얼이다시피 말했다.
'대답하지 마, 이현아…'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내가 뭐… 잘못했나요?"
그 말에 주원은 잠시 눈을 마주친 채, 그를 지나쳐 주방으로 향했다.
서로를 스쳐 지나가는 그 순간—
이현의 팔과 주원의 어깨가 닿았다.
짧은 접촉이었지만, 마치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확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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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사 중
"어제는 많이 지쳐 보이셨습니다."
"그래요? 그렇게 보였어요?"
"그보다, 감정이… 좀 위험해 보였습니다."
"위험?"
주원은 젓가락을 멈추며 이현을 바라봤다.
그 눈빛—어제 봤던 바로 그, 모든 걸 꿰뚫는 눈이었다.
"전직 심리 상담 조수였거든요.
사람의 '표정 이면'을 읽는 데 익숙한 편입니다."
"…그래서 날 관찰하겠다는 거예요?"
"아뇨. 관찰이라기보단—지켜보겠습니다.
…필요하신 만큼만."
그 말 한마디에, 주원은 심장이 조여들었다.
처음이었다.
누군가가 그의 마음 안쪽을 건드린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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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방송국 대기실
ALEZ의 라디오 스케줄 날.
멤버들은 웃고 떠들며 분위기를 띄웠지만,
주원은 묘하게 예민했다.
왜인지, 이현의 시선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었다.
"형, 마이크 다시 체크 좀 부탁해요!"
막내가 외쳤고, 이현이 달려왔다.
주원의 쇄골 부분에 와이어를 끼우려던 순간—
이현의 손끝이, 주원의 피부를 스쳤다.
"...!"
하필이면 셔츠가 약간 풀어져 있었다.
뜨거운 살 위에 닿은 손길.
그 짧은 접촉에 주원은 숨을 들이마셨다.
"죄송합니다. 불편하셨나요?"
"...괜찮아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미 안쪽에서 열이 퍼지고 있었다.
이건 단순한 터치가 아니었다.
묘하게 섬세했고, 위험할 만큼 조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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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 11시. 연습실, 단둘이
스케줄을 마치고 돌아온 숙소.
하지만 주원은 곧장 연습실로 향했다.
도저히 진정되지 않았다.
몸을 움직이면 이 감정이 식을 거라 믿고 싶었다.
하지만, 거기엔 이미 이현이 있었다.
고개를 든 그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정면에서 맞부딪혔다.
"왜 여기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늘, 끝까지 괜찮은지 궁금해서요."
주원은 천천히 걸어가 이현 앞에 섰다.
서로 너무 가까웠다.
이현의 체온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쪽, 날 너무 잘 아는 것 같아."
"그게 싫으신가요?"
"...아니요. 싫지 않아."
순간, 둘 사이의 공기가 탁 막히는 듯했다.
그리고—주원이 먼저 다가섰다.
그의 손이, 이현의 셔츠 앞자락을 잡았다.
"한 번만 물어볼게요."
"…네."
"지금—날, 끌어안아 줄 수 있어요?"
이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조심스럽게, 주원의 어깨를 감쌌다.
그 품은 따뜻했고, 단단했고, 조심스러웠다.
"…왜 이렇게 따뜻해요…"
주원이 속삭이듯 말하자,
이현은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조용히 말했다.
"당신이 너무 차가워서요."
그 말에 주원의 입술이 떨렸다.
그리고, 결국 그 품 안에서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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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ade to Black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은 채
말없이, 천천히, 조심스럽게… 깊어졌다.
허락된 침묵 속에서, 손끝이 살결을 따라 움직였고
입술은 고백보다 더 많은 말을 전했다.
그 밤,
주원은 처음으로…
자기 자신으로 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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