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Reader

Chapter 1 - Chapter 1: Yandere Youngae 1

* * *

"어떠니?"

위에서 내려다보며, 살며시 옷깃을 들추는 그녀. 아름다운 하얀 피부에 보랏빛 눈동자, 그리고 창문에서 흘러들어오는 밤바람에 흩날리는 은빛 머릿결. 천천히 내 뺨을 어루만지며 그녀는 작고 빨간 입술로 물어온다.

"오늘도..너무 아름답습니다...노엘...영애님."

천천히 그녀가 옷깃을 정리해주며, 잔 머리를 옆으로 넘겼다. 마치 나를 유혹하듯 천천히 그리고 차가운 그녀의 피부와는 다른 오묘하고 뜨겁게 말이다.

"그런데...왜 다른 년이랑 친하게 인사했니?"

시발, 시발, 시발, 시발, 시발. 오늘 빵집에 들러, 하인들과 나눠먹을 간식을 사러 갔다. 거기서 매번 달갑게 인사해주는 빵집 메리와 인사한 것이 걸렸다...언제 본 거지?

"아...그..."

대답은 필요 없다는 듯 굳게 닫힌 입을 바라본다. 하얗고 작은 손이 점점 나의 손목을 잡아간다.

"왜...다른 여자랑 말을 나눴니?"

살짝 빨간 입술을 깨무는 그녀. 유혹적이며 나의 아랫도리가 조금씩 올라가는게 느껴졌지만, 그 만큼 공포가 머리끝부터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뿌득!'

"끄아아아악!!!"

손목이 부러졌다. 그녀가 손목을 잡고 손가락으로 살짝 누르자마자, 삔 것처럼 꺾여선 안되는 자세로 꺾여버렸다.

"아아아아악!"

살려줘, 제발!!!

.

"여, 티르."

내게 말을 걸어오는 저 얼빵한 얼굴. 낮이 되도록 질펀하게 자고 일어난 듯한 한심한 얼굴에 절로 신경질이 난다.

"미친 놈아, 오늘 작업물 다 빠졌잖아."

아침 댓바람부터 오는 행상인들과 상단들로 바쁜 시장터. 나는 이 한심한 얼굴을 지닌 제퍼스와 같이 바쁜 사람들 사이에서 작업을 하는 작업꾼이었다.

"뭐, 아침에 사람들이 많을 줄 누가 알았냐."

"내가 입이 닳도록 말 안했냐? 이번 시장터엔 그...백작가 영애가 돌아와서 북적일거라고."

"하아암!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나."

"아침이 아니면 사람들이 눈에 핏발이 서서 작업 감시하는데 제대로 안 된다고."

"뭘, 그렇게 따지냐. 어차피 낮잠 시간이 가까워져서 사람들도 꽤 노른해졌을거야. 그러니 오히려 괜찮지 않겠냐?

"미친...아침 정신 못 차리는 시간이 우리 제일 큰 대목인거 몇 번이나 말해줬어? 하아...됐다."

"그래서 그런데, 저 쪽 어떠냐?"

나는 그 때 제퍼스가 가리킨 손가락을 따라 한 명의 여성을 보고 말았다. 새하얀 그리고 레이스가 달린 부드러운 재질의 드레스부터, 하얀 장갑에 노란 모자를 쓴...마치 인형같은 그런 사람을 말이다.

"어때? 시장가를 놀러온 아리따운 아가씨같은데, 이번 작업으로 충분하지 않아?"

"뭐...괜찮네."

"흐흐, 오면서 나도 작업으로 물색을 해봤다 이거야."

분명 퍼질러 자다 부리나케 오면서 얻어 걸린 모양이다. 말 그대로 세상 물정 아무 것도 모를 것 같은 시장가에 놀러온 아가씨라. 확실히 대목철은 대목철이긴 한가 보다.

"이번만 봐줄 줄 알아."

"예예. 그럼 첫 스타트는 티르님께서 뽑아주시려나?"

은근슬쩍 내게 작업을 미루다니. 하지만 작업을 하게 되면 배분은 8대 2로 수익이 짭짤해질 수 밖에 없으니 제퍼스는 은근슬쩍 내게 양보를 해준 것이다. 미안하긴 한가보네.

"그럼 다녀온다."

"멀리 안 간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천천히 그녀의 곁으로 다가간다. 눈에 띄어서도 안 되고 사람들 틈바구니 사이에 녹아들어 바쁜 걸음을 놀리며,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시장가를 일부러 훑어본다.

'손을 좀 풀고...'

천천히 손가락을 쥐었다피며 연습을 해본다. 한 두번 해본 솜씨가 아닌 손놀림. 가볍게 다른 상인이나 모험가들로 보이는 사람들을 먼저 작업을 칠 수 있지만, 낚시를 할 때 본 대어를 놓칠 수 있으니 만전을 기한다.

'천천히.'

자연스럽게, 그리고 녹아들 정도로. 나는 천천히 저 경치를 멀리 구경하고 있는 아가씨의 팔에 걸린 작은 가방에 손을 뻗는다. 이제 작업은 거의 완료된 것이나 마찬가지.

'끝났다.'

빠르게 손을 가방에 넣고 잡아당긴다.

'됐다!'

라고 하는 순간, 내 눈은 하늘, 그리고 천천히 움직이는 구름과 따사로운 햇살을 구경하고 있었다.

'뭐가...'

붕 떠서 아무 힘도 들어가지 않는 기분. 난 중력의 끝자락에서 관성이라는 법칙에 흔들리는 하나의 작은 동물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위로 간 것은 당연히 아래로 흐른다.

'아.'

서서히 아래로 떨어지는 찰나의 순간을 느낀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냉정해 보이는 저 무서운 보랏빛 눈과, 찰랑거리는 은빛 머리카락...그리고 날 잡고 있는 팔이었다.

'퍼어억!'

그렇게 시야가 하얗게 변했다.

.

10분 후.

"흡!"

방금 전의 충격적인 모습이 기억난 나는 비명 아닌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난 주위를 둘러보며 급하게 상황을 살핀다.

'씨발, 좆된건가.'

초짜 시절, 작업이 제대로 되지 않아 잡힌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그 땐 어려서 눈물, 콧물 다 빼면서 빌고 빌어 얻어맞고 끝난 비화로 끝났지만 지금은 18살의 늠름한 성인. 분명 난 이대로 끝장이 나고 말 것이다.

'엄청 잘 묶었어!'

팔과 발목을 묶고 있는 끈이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품 속에 숨겨둔 작은 칼을 꺼내고 싶었지만 손목까지 제대로 감겨져 도저히 주머니까지 손이 닿지 않는다.

"일어났니?"

맑고 아름다운 목소리. 난 그 때 고개를 들고 그 목소리의 진원지를 바라보았다.

'아...'

큰 나무상자 위에 걸터앉은 그녀는 예전에 보았던, 그...여신상의 조각상 같았다. 절대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고, 또 유리처럼 깔끔한 피부. 찰랑거리는 하얀 머리카락과 보랏빛 눈은 날 현옥시키기 충분했다.

"아팠니?"

"...아뇨."

순간 머리가 얼얼한 것도 잊은 채 대답했다.

"그럼 이제 널 관병들한테 넘겨야겠네."

"자,잠깐만요!!!"

난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아름다운 건 아름다운 거고 지금 이 여성만이 내 살길을 가지고 있다. 지금 관병들에게 끌려갔다간 반병신이 될 때까지 얻어맞고 죽지도 못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분명 어느 곳 높은 자리의 아가씨인 듯 한데, 그런 여성의 소매를 건드렸으니 중죄에 해당할 것이 분명했다.

"왜?"

"한 번만! 한 번만 용서해주시면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그 말을 한 사람치고 그러지 않던 사람은 못 봤는데."

그렇긴 했다. 나도 그런 사람은 본 적이 없고, 나 또한 어릴 때 싹싹 빌고 난 뒤 다음 날 바로 작업쳤으니까...

"...흐흑!"

이럴 땐 이제야 성인인 어린 얼굴을 이용할 수 밖에 없다. 나는 내 숨겨둔 비기인 눈물 콧물 빼기를 사용하려 했다.

"울면 죽인다?"

"......."

난 울려고 준비하던 눈물들을 안구 속에 집어넣었다.

"빠르네."

"......."

"손도 꽤 빠르던데."

거짓말. 내 손이 빨랐다면 이미 저 아가씨의 가방은 내 품 안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잡히진 않았겠지.

"도적 길드니?"

"아,아뇨! 저 따위가 무슨 그런 엄청나게 흉악한 길드를 들어가겠습니까! 저는 그냥 선량한 시민이었다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전향한 소매치기...범일 뿐입니다."

"하긴, 여기 근방은 내가 전부 청소했으니까."

"네?"

"너, 이름이 뭐니?"

"티르! 티르입니다!"

"......"

여성은 아무 말이 없어졌다. 난 그녀가 무슨 말이라도 해주길 기다렸지만, 가만히 날 바라보며 닫은 입술을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며 절망했다.

'왜,왜...이름이 마음에 안 드나?!'

이름 가지고 화가 난 것일까? 가끔 이름이 티르라서 여자같다고 화를 내던 작업대장이 생각났다. 물론 녀석에게서 벗어나 지금 시장가에서 활동하고 있긴 하지만, 간간히 소식은 들었는데 요즘 통 소식이 들려오질 않는다.

"거짓말은 아니네...티르가...맞아."

난 그녀가 어떻게 날 알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가끔 가짜로 여럿 이름을 불긴 했지만, 지금 실명을 말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쎄한 기분이 들어 바로 실명을 밝혔다.

'뭐지?'

그녀는 내 본명이 티르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 소문만 무성했던 점쟁이나 마녀같은 사람일까 의문이 들 때.

"오랜만이야."

그 때 난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어릴 때 만난 소피아? 아닌데, 걔는 머리가 갈색이었어. 엘리? 수잔? 이벨라?...전부 아니었다. 저렇게 특색있는 머릿결과 예쁜 얼굴, 그리고 보랏빛 눈을 가진 여성. 골목길 어귀 쯤이라 그림자가 진 곳이었지만, 그녀의 얼굴은 그럼에도 빛이 나는 것 같았다. 허나, 그의 기억 속에 이런 세공유리품 같은 하얀 미인을 본 기억이 없었다.

"...어,어! 잘 지냈어?! 너! 맞지?!"

일단 살기 위해 그녀에게 아는 척을 한다.

"......"

"이야! 이게 얼마만이야! 엄청 이뻐졌어! 몰라보게 달라졌네!"

"...거짓말은 그만두지 그러니?"

"......"

다시 말을 멈췄다. 그녀의 얼굴이 더욱 무뚝뚝해진 것 같아서...그냥 본능적으로 그녀가 지금 엄청나게 화가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 대답을 원한다는 저 붉은 입술이 다시 열렸다.

"기억 안 나니?"

대체 무슨 말인가. 난 지금까지 은빛 머리카락에 보랏빛 눈을 가진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화를 낼 것을 무릅쓰고 입을 열었다.

"네...혹시 저희가 언제...만난 적이 있었나요?"

"응."

응이라는 말은 내겐 전혀 좋은 힌트가 되어주지 못한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그녀가 기억나질 않았다. 어릴 때 내 푼돈을 털어가던 야바위꾼의 속임수를 알아내려 할 때보다, 더욱 험난한 난관 같았다.

"어쨋건, 흠...그래. 내 가방을 훔치려고 했지?"

"아,아! 죄송합니다! 다신 그러지 않겠다고 제 신께 맹세합니다!"

"신 안 믿잖아?"

그것까지 꿰뚫어보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겁이 문득 들었다. 진짜 마녀가 맞는 것 같다.

"...죄송합니다."

"자, 네가 노린 내 가방 안에 있는 것들이란다."

'차르륵!'

유리가 떨어지는 소리가 나며, 그 안에 있던 굵은 보석들이 잔뜩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세공되어 나온 목걸이와 반지, 귀걸이 등등. 거친 흙바닥에 쏟아진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장식품들이 몇 번 튕기나 내 주위에 흩뿌려졌다.

"허업!"

떨어진 목걸이에 비춰진 내 모습과 눈에 마주쳤고, 내 전재산을 다 털어도 저 목걸이에 박힌 루비로 보이는 보석 하나도 못 살 것 같았다.

"이제 큰 중죄인지 알겠지?"

"다시는! 다시는, 아가씨의 물건에 손 대지 않겠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그럼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하고 관병에게 넘겨주면 되겠네?"

"아아악! 아닙니다! 제발 목숨이랑 관병에게 넘기는 것만은 봐주시길!!!"

살아야 한다. 저, 보석들을 마구잡이로 떨어트렸다는 것은 그 만큼 엄청난 부자라는 뜻이고, 지금 난 정말 잘못 걸렸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제퍼스를 끝없이 저주하고 싶어졌다. 그가 작업을 넘겨주지만 않았더라면 하는 쓸데없는 망상에 빠졌을 때.

"그럼 내 하인해."

"네?"

"하인."

난 그 때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아직도 나는...그 때를 후회한다. 차라리 관병에게 넘겨져 반병신이 되는 것이 나은 그런 선택이었다.

"네!!! 하겠습니다! 하인! 시켜만 주신다면 뭐든 하겠습니다! 목숨만 부지해주신다면 노력하는 하인이 되어 성심껏 아가씨를 모시겠습니다!"

"그래."

'스륵!'

내 몸을 구속하던 끈들이 전부 풀려나갔다. 예리한 단면이 보이는데...이걸 언제 잘랐을까하는 의문이 내 머릿속에 맴돈다.

"따라오렴."

"네!"

군기가 바짝 든 채로 살기 위해 그녀의 뒤를 따른다. 지금 구속이 풀렸는데, 도망칠까? 잠깐 발걸음이 늦춰졌다.

"......"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멈칫한 날 바라보고 있다. 내 생존본능에 따르자면...지금 도망치게 될 경우 뼈저리게 후회하는 결과가 도출 될 것이다.

"자,잠시만 기다려주시길 바랍니다!"

난 머뭇거린 이유를 찾았다. 급하게 그녀가 떨어트린 가방을 집어 쏟아진 보석들을 담고 그녀의 앞에 섰다. 이 정도면 머뭇거린 이유는 충분하다.

"착하구나."

다행히 점수를 딴 모양이다. 헤실거리며 웃던 난 이 기회에 더 점수를 따놓을 요량이었다.

"아가씨! 아가씨는 이름이 무엇입니까?"

"......"

손바닥을 싹싹 비비며 다가간 내게,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또 화가 난 얼굴이었다.

"진짜 기억 못하는구나."

"네?"

"다시 소개하마. 내 이름은 노엘. 노엘 데커드 라고 한다."

노엘...노엘 데커드...데커드...잠깐.

"데커드 백작가!!!"

"다른 이의 가족 성을 큰소리로 말하는 것은 실례란다."

"죄,죄송합니다!"

난 필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잘못 걸렸다. 오늘 날이 좋고 또 시장가가 북적이길래 재수가 좋은 날이라 생각했다. 제퍼스가 늦게 온 것은 짜증이 났긴 했지만, 녀석이 뒤를 봐주고 내가 손으로 작업을 친다면 최소 은화 1개는 땡길 수 있는 그런 운수가 좋은 날 말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백작가 영애님을!'

그 소문의 영애. 오랜기간 동안 기사수업을 받고 돌아온 그녀가 백작가로 돌아왔다는 소문. 그리고 그녀가 지금 눈 앞에 있다.

'아...신이시여...'

갑자기 신이 믿고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내 눈 앞에 있는 것은 자비를 베푸는 신이 아닌, 내가 거슬린다고 목을 베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그런 높은 위치의 사람이었다.

"그럼 제대로 따라오렴."

허나, 그녀는 살짝 웃음을 지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네?"

"어디로 가는지 잘 모르잖니. 사람들이 많은 곳을 지나가야 하니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손을 잡도록 해."

난 그 날, 18살 만에 처음으로 여자의 손을 잡아보았다. 느낌은 매우 부드럽고, 그리고 또 작으며 따뜻한 그런 감촉이었다.

"......"

부끄럽다는 듯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뒤를 따른다. 세상에 둘 만 있는 것 같다는 착각과 함께, 그렇게

"영애님의 하인이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늙은 집사를 만나 그가 내게 내미는 하인복과 하얀 장갑, 그리고 구두를 받아든다.

"자,잠시만요."

"티르라고 하셨나요?"

"네..."

정신이 아찔해질 것 같은 경험이었다. 그녀의 손을 잡고 큰 강을 건너는 다리를 지나, 거대한 성문을 열고 백작가의 내성에 들어왔다. 수 많은 정렬된 기사들의 사이에서 환대를 받으며 들어가니, 기품있어 보이는 검은 정장의 집사가 수염을 뽐내며 날 손님실로 안내했다.

'이게...뭐야...'

벌써 멍해지는 기분. 난 집사가 내미는 옷가지들을 받아들고 탈의실로 직행할 수 밖에 없었다.

"흠, 나쁘지 않군요."

하인복을 입고 온 내게 말을 건네는 집사.

"저희 데커드 백작가 노엘 영애님께선 아직 전속 하인이 있질 않습니다. 굳이 원하시지 않으셔서 없었지만, 밖에서 데려오실 줄이야."

"전속 하인이요?"

"예, 앞으로 영애님의 전속으로서 일하시게 될겁니다. 하녀들 또한 물리시니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다행이군요. 속옷 류를 제외하곤 이제 담당 하인이 생겼으니 한 시름 놓게 되었습니다."

얼빵한 얼굴을 한 나는 그렇게 백작가의 하인이 되었다. 그 뒤로 다른 하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백작가의 일을 급하게 배워나갔다. 만약, 이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게 된다면 보석들을 훔친 죄로 관병에 끌려가게 될 것이기에. 난 나름대로 필사적이었다.

"이제, 오늘 저녁거리를 들고 노엘님의 방에 찾아가시면 됩니다."

"네,네..."

혼미해질 정도로 예법들을 배워나가던 난 집사의 말에 따라 급하게 접시를 들고 노엘의 방으로 향한다.

'똑! 똑!'

"노,노엘님. 식사 가지고 왔습니다."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들어와."

그 말에 문을 천천히 열고 안으로 들어갔으며, 보이는 것은 퀸사이즈 이상의 거대한 침대와 한 눈에 백작가가 내다보이는 거대한 창문, 그리고 푹신한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그녀의 모습이었다.

"여,여기 놔두면 될까요?"

"그러렴."

"네..."

열심히 백작가의 하인이 행해야할 걸음걸이를 따라하며 천천히 그릇을 놔둔다.

"딱 맞춰서 왔구나. 예법도 그럴 듯 해."

"헤헤, 감사합니다."

반나절도 안 된 교육이지만, 그럭저럭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내심 내 기억력이 높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낀다.

"그런데."

"네?"

나는, 그 때서야 이 아름다운 영애님의 하인이 된 것이 지옥임을 알게 되었다.

"다른 하녀들과 이야기를 나눴니?"

"네? 네...예법을 배우려고..."

"왜?"

"네? 예법을..."

"왜?"

"......"

점점 다가오는 그녀.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천천히 내 목을 움켜쥐었고, 작은 숨결을 뱉으며 속삭여주었다.

"죽고 싶니?"

난 그 날로 아라크네의 거미줄에 걸린 절망감과, 함정에 빠진 기사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무력감과 공포. 그리고.

'뿌득!'

"아아아아악!!!!"

손목이 비틀어지는 감각을 말이다.

* * *

More Chapt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