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Reader

Chapter 7 - Chapter 7: Yandere Youngae 7

* * *

"이제 내리면 되겠군요."

백작가의 정 중앙. 제일 높고 제일 큰 건물. 즉, 이 건물은 바로.

'이 영지의 주인...이 사는 곳.'

이름 시무엘 데커드라고 하는 백작이 오랫동안 영지를 다스리고 있다는 말만 들었다. 허나, 내가 어릴 때쯤부터 건강이 많이 약해져 성 밖을 나오질 않고 있으며, 소문으로는 백작가의 아내, 즉 엘리자 데커드가 대리청정을 한다고 하는 모양.

"내리자."

그녀가 다시 하얀 손을 내민다. 나는 에스코트를 위해 마차에서 먼저 내려 그녀를 내려주고,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단화소리가 또각거리며 울릴 때, 옆에서 창을 쥔 병사가 크게 외친다.

"노엘 데커드님이십니다!"

본래 가족이 들어와도 이렇게 소리를 지르는건가 싶었다. 그렇다면 매번 그들이 다닐 때마다 외치는 병사는 목이 나가질 않을까 걱정해본다.

"왔느냐?"

그들의 앞에는 나이가 들어보이는 여성, 눈치로 봤을 때 엘리자 데커드라는 현재 백작가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백작의 아내였다. 노엘과는 닮지 않은...그저 평범한 금빛 머리카락에 파란 눈을 가진, 중년의 여성이었다. 나이가 들었어도 기품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듯 곧은 허리와 내려다볼 것 같은 눈초리가 인상적이었다.

"오랜만에 뵙네요. 어머니."

왜 일까, 노엘의 어머니란 말에 흠칫한 듯 한 그녀의 모습.

"그래, 건강해보여서 보기가 좋구나."

"네, 어머님도요. 그럼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눌까요?"

예법을 잘 모르는 나였지만, 현재 노엘이 하는 이야기가 이상하다는 것 쯤은 알고 있었다. 외성에서 살고 있는 노엘이 내성으로 들어와 안주인인 엘리자에게 집으로 들어가잔 말을 한다? 가족간의 항렬에도, 그리고 예법에도 전혀 맞지 않는 그런 행동이었다.

"그래. 들어가자꾸나."

무뚝뚝한 얼굴로 대답하는 엘리자.

"네."

싱긋 웃어주는 노엘과 함께 나는 그 뒤를 따라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헌데, 뒤는 새로운...시종이니?"

"네, 이번에 새로 들어온 아이랍니다."

노엘이 가볍게 뒤로 물러나자, 나는 그제서야 고개를 푹 숙이며 인사를 올린다. 아직 예법이 익숙치 않아 어색한 동작이었기에 살짝 다리가 휘청였다.

"반갑습니다. 현재 노엘 데커드 영애님의 전속 하인을 담당하고 있는 티르라고 합니다."

"...그렇구나."

떨떠름한 그녀의 얼굴. 나는 급히 고개를 들고는 노엘의 뒤로 물러났다. 하인으로서 인사를 올린 후 대답을 들으면 바로 자신의 자리로 가야하는 것이 매너.

"귀엽죠?"

"...그래."

그 말에 잠깐 노엘이 멈칫했다. 저 느낌의 표정은...그녀가 화가 났다는 느낌이었는데.

"노,노엘님?"

나도 모르게 둘 만의 대화를 하고 있는 도중, 말을 끼어들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두려웠지만, 현재 나설 수 있는 사람이 나 밖에 없다 판단한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을까.

"응?"

"...저,저...오랫동안 마차를 타셨으니 목이 타질 않으십니까?"

"흐음. 그렇게 생각하니?"

"네,네. 본디 말을 건네서는 안 되지만...노엘님의 전속 하인으로서 노엘님께서 힘들어하시는 것은 제 불찰이자 임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기에..."

"어머니."

"....왜 그러니?"

"절 위해서 홍차와 티타임을 가질 수 있도록 디저트를 준비해주시겠어요?"

"...손님실에 다과가 있다."

보통 자신의 딸이 아니더라도, 백작의 딸이라면 그녀에겐 작은 딸 같은 개념과 마찬가지가 된다. 그렇다면 아무리 미워도 보는 이들 때문이라도 손님실이 아니라 자신의 안실에 부르는 것이 예법.

'어떻게 된거지.'

엘리자는 노엘을 혐오하는가? 노엘이 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려는 듯 대답하는 모습을 봤을 때 그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엘리자는 나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녀는 노엘을 무서워한다.'

손날 한 번으로 양아치들의 목을 베어내는 실력자. 어느 정도의 실력가인지는 가늠이 되질 않으나, 엘리자의 행동을 봤을 때...그녀의 무력이 공포심을 배양시켰다라는 가설이 맞는건가?

'혹은 약점을 틀어쥐고 있을지도.'

아무리 노엘이라도, 백작가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엘리자를 무력으로 건드리지는 못할 것이다. 백작가의 영애이기에, 그녀로선 패륜을 할 수 없는 그런 입장.

"이 쪽으로 오렴."

그녀의 안내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와.'

내빈관의 안 쪽 중심부에는 거대한 정원이 꾸며져 있었다.

"신기하니?"

노엘이 묻는다.

"네..."

"아버지께서 편찮으셔서 최대한 자연과 가까운 것이 좋다고 하길래 만들어졌지."

얼마나 돈을 써대면 이 정원을 만들고 유지할 수 있을까 가늠이 되질 않는다. 큰 줄기가 싱그러이 피어나는 거대한 잎사귀를 지닌 여러 종류의 나무들, 항상 관리가 된 듯 만개한 계절꽃들의 향기가 코 끝을 간지럽혔다.

'끼이이익!'

백작가의 외빈 혹은 중요한 인사가 왔을 때 열리는 손님실. 화려한 장식들이 큰 참나무로 보이는 나무로 된 문에 조각되어 빛을 보이고 있다. 정원에 어울리게 나무의 조각들은 꽃과 잎사귀를 장식하고 있었고, 잘못해서 실수라도 하는 날에 저 얇게 조각된 나무의 줄기를 건드려 부러트릴 것 같은 불안함이 생겨난다.

"훗."

그걸 알아챘는지, 노엘이 손가락으로 톡하고 나뭇잎 하나를 부러트린다.

'허업!'

눈이 크게 떠진다. 급히 엘리자의 눈치를 살폈다. 엘리자는 노엘의 행동을 바라보다 못 본 척하며 안으로 안내한다.

"시종이 곧 다과를 가져올 것이란다. 얌전히 기다리렴."

"네, 어머님."

어머님이란 말에 흠칫흠칫 놀라는 그녀. 일이 있다며 일어난 그녀의 발걸음이 꽤나 빨랐다.

'무슨 이유일까.'

눈치만 보면서, 집사가 조언해준 굳이 입을 열지 말라는 충고를 다시금 되새긴다.

'여기도 엄청나네.'

자연을 모토로 만든 중심부의 정원 때문일까. 손님실 또한 그 모토에 충실한지 꽃병이 여럿 걸려 있었고, 대부분의 물건들은 나무로 되어 있었으며, 테이블이나 의자는 말린 드라이 플라워가 꽂혀 있었다.

"어때?"

"네?"

"날 알고 싶다며."

그녀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으며 물었다.

"...그렇군요."

이곳은 노엘이 살아온 곳. 어젯 밤의 말을 지키기 위해 그녀는 날 이곳으로 데려온 것이다.

"향기가 많네요."

"꽃향기는 자연치유력이 있다고 하잖아.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선 스스로 일어나시는 수 밖에 없다고 하거든."

"아..."

동정을 해야할까, 아니면 힘내라고 하며 응원을 해야할까. 굳이 대답이 생각나지 않아 바보처럼 짧은 단말마만 내뱉었을 뿐이다.

"역시 너무 생각이 많아."

"네?"

"그런 점이 너무 좋지만."

부끄럽다는 듯 웃는 그녀.

'똑! 똑!'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잠시 엘리자가 자리를 비웠을 때 하녀 한 명이 들어오며 다과를 큰 운반카에 실어서 가져왔다.

"체리 머핀과 블루베리 쿠키, 티라미수 입니다."

포크와 나이프를 노엘의 앞에 내놓으며, 천천히 과자들을 내려놓는다.

'고생하는구나.'

난 그녀가 하는 예법을 유심히 바라봤다. 나도 저렇게 능숙하게 된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에 잠겨본다.

"저기."

"네?"

모든 식기와 음식, 홍차 주전자와 잔을 내려놓은 하녀에게 말을 건네는 노엘.

"천박하게 왜 끼를 부리니?"

"네,네? 무슨..."

"내 하인이 널 봤잖아."

"....무슨 말씀이신...지..."

노엘이 웃고 있다.

"실수니까, 손가락 하나만 직접 부러트리는 걸로 봐줄게. 아, 일해야하니 새끼손가락이 좋겠네?"

"아,아가...씨?"

"내 손에 왼 팔이 잘릴래? 아니면 스스로 새끼손가락을 부러트릴래?"

말리고 싶었다. 허나, 말리게 된다면 더 큰 일이 터질 것 같아 선뜻 나서지 못한다.

"아,아가씨! 죄송합니다! 부디 용서를!"

하녀의 외침. 들고 있던 작은 트레이가 바닥에 떨어지며 쇳소리를 내었고, 노엘은 웃음기를 잃지 않으며, 천천히 홍차를 들어 마신다.

"용서를 부탁드립니다!!!"

"티르."

"네..."

"어떻게 할까?"

웃으며 내게 묻는다. 아까까지 한 번쯤 꿈꿨던 백작가에 들어가보는 꿈이...몇 시간 채 되지 않아 악몽으로 변했다.

"...저 하녀는 잘못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응?"

"저 하녀가 너무...못 생겨서 제가 신기해서 쳐다봤습니다."

침을 꿀꺽이며 그녀의 대답을 기다린다. 깊은 수렁 같은 눈. 무뚝뚝한 입술. 그리고 차가운 피부. 한 없이 조용하게 날 바라보다 그녀가 웃음지었다.

"역시 그렇지? 티르는 저런 살찐 돼지는 싫어하지?"

"...예. 저 하녀는 너무 살쪘으며...못 생겼습니다."

처음 본 하녀에게 미안함을 속으로 표시한다. 겉으로는 절대 드러나지 않으며, 고개를 숙이며 인상을 찌뿌린다.

"대체 어떻게 저리 못 생겼나 싶어서 저도 모르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흠, 나도 그럴 때가 있지."

허나, 아직 분이 풀리지 않았다는 듯한 그녀의 수렁같은 눈.

"노,노엘님에 비해서 엄청나게 돼지같고 냄새까지 나는 돼지에게 어떤 이가 여심을 품겠습니까? 노엘님이 꽃이라면 저 하녀는 꽃에 빛을 잃고 죽어가는 이끼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 그렇지? 티르는 달콤한 말을 너무 잘해. 얘."

"네,네!"

"가보렴. 내가 오해해서 미안하고."

겁에 질려 급하게 고개를 들었던 하녀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뛰쳐나간다. 예법이 나보다 훨씬 능숙했던 그녀가 저 정도로 떨다니. 역시 공포에는 몸에 배어있는 예법도 필요가 없는 모양이다.

"어머님은 왜 안 오실까?"

나는 차라리 엘리자가 방금 순간을 못 봤던게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늦었구나. 급한 용무가 있어서 말이다."

그 순간 그녀가 다른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왔다.

"마시죠."

"...그러자꾸나."

엘리자가 앉아서 홍차를 들었다. 어머니와 딸의 상관관계가 아닌...뭔가 어린 상전을 모시는 나이든 사람이 겨우 반말을 하는 느낌이었다.

'대체 이 관계는....'

데커드 백작가의 실세라 할 수 있는 엘리자가 노엘을 보며 무서워한다. 알 수 없는 오묘한 불안함이 내 어깨를 스치는 기분이었다.

"아, 커틀은 잘 있죠?"

엘리자의 검지가 살짝 떨린다.

"잘 있단다."

홍차를 마시던 그녀의 입술이 굳었다.

"제가 왔다고 전해주시겠어요? 오랜만에 남동생을 만나고 싶어서요."

"커,커틀은 현재 백작가 차기 영주란다. 차기 영주로서 실무수업을 받고 있어서 바빠서 시간을 내주긴 어렵겠구나."

"그런가요? 그래도 오랜만에 만나는 누님인데..."

"차가 식겠구나! 얼른 들자꾸나."

홍차가 나온 지 아직 3분도 지나지 않았다. 처음부터 뜨겁게 김이 나고 있던 홍차가 그리 빨리 식을 리는 없었다.

"아버님은 차도가 보이시나요?"

"...백작님께서는 현재도 기력이 없는 상태란다."

"그렇군요."

그 둘의 대화는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그저, 노엘이 물으면 엘리자가 대답한다. 엘리자는 마치 절대 끼기 싫은 불편하고 높은 상관과 함께 하는 티타임마냥 좌불안석으로 보였다.

'처세술의 대가라고 하던데...'

엘리자는 분명, 대상단의 딸로 계약혼인을 맺어 백작가에 들어온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데커드 백작이 쓰러졌을 때, 능수능란하게 백작가를 안정화 시킬 수 있었던 것. 그 과정 중에 높은 사람들과의 대면자리도 많았을 것인데, 그녀의 모습은 대상단의 딸이자 지금까지 백작가를 이끌어온 여자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겁을 먹은 모습이었다.

'확실하다...엘리자는 노엘을 무서워한다...'

깊게 엘리자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시선이 느껴졌다.

'아차!'

노엘이 날 바라보고 있다. 엘리자를 빤히 쳐다봤다는 것을 생각해낸 내 이마에선 다시 땀방울이 흘렀다.

"노,노엘님?"

"왜?"

"그..."

잠깐 엘리자의 불안한 눈빛이 날 스쳤다. 그녀 또한 노엘을 조심하고 있다. 그리고 난 그녀를 바라봤고, 아까 전 하녀의 사건이 기억났다.

'그렇다고 엘리자님을 모욕할 수도 없으니...어떻게 해야 하지?'

저 시험한다는 듯한 눈빛. 검지손톱을 톡, 톡 소리를 내며 테이블을 두들기고 있다. 시간이 느려진 것마냥, 답답해졌고 또 식은 땀이 등어리를 통해 흐르고 있었다.

"시,실례지만 저에게도 홍차를 마실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응?"

"아,아까 전에 마차에서부터 목이 마르시지 않느냐고 물었던 것이...사실 제가 목이 말라서 그랬던 것입니다."

어쩐지 그 나마 그럴 듯한 변명이 입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아. 목 말랐어?"

"예, 너무 목이 말라서...두 분이 홍차를 마시는 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

장난스럽게 그녀가 일어난다. 그녀가 저 개구쟁이 같은 표정을 짓고 있을 때는...내겐 너무나 곤란한 일이 생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노엘...흡!"

그녀가 내 입을 맞춰들어갔다. 그리고 입으로 내 입술을 열어, 무언가를 넘겨준다.

'꿀꺽!'

맛은...살짝 시며 달콤한 것이.

'홍차?'

노엘이 홍차를 입에 머금고 내 입으로 전달해준 것이다.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볼 때.

"잔이 두 개 뿐이라."

내 무덤을 내가 판 기분이었다.

* * *

More Chapt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