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해결해야 한다. 머리를 아무리 굴려봐도 현재 이 상황을 벗어날만한 제대로 된 변명이 생각나지 않는다.
'큰 일이다.'
잘못 판단했다. 급하게 그녀와 느낌적으로 완전한 결혼, 혹은 성약이 될 것 같은 느낌에 피할 수 밖에 없던 본능이었다. 의미를 담은 행위는 결국 그들의 서약이 되고, 나 같은 사람과 노엘이라는 신분적으로 무력으로 거물인 자가 계약을 한다면...나에겐 그 계약을 무를 힘 자체가 없기에 그대로 따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녀와 잠 자리를 어떻게든 피했다. 아마 지금처럼 결혼이라는 입장을 내걸고 키스를 하는 그녀의 심정은 아마, 약혼의 개념.
'잠 자리는...결혼이겠지.'
그리고 그녀의 배 안에 결과물이 생긴다면...나는 이 감옥같은 저택에 갇혀 그녀의 노리개로 살 수 밖에 없는 운명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녀가 내게 다가온다.
"왜 도망치는거야?"
식은 땀이 흐를 정도로 그녀의 눈은 텅 빈 것처럼 잠겨져 있었고, 살짝 씩 흔들리는 것이 쇼크를 받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젠장할.'
쇼크를 받은 사람에게 아무리 떠들어 봤자, 아무 것도 통하지 않는다. 주머니가 털리건 말건 고주망태가 되서 신세한탄하며 엉엉 울어재끼는 털보 녀석도 그랬고, 마약에 찌들어 오랜만에 구한 좋은 마약을 한 번에 털어넣고 약빨이 떨어지자 울던 창녀도 그랬다. 쇼크를 받는 자는 아무 말이 통하지 않는다.
"도망치지 않습니다."
"거짓말!"
확실한 거짓말이긴 했다. 모험가를 꿈꾼다라는 말은 그녀의 하인을 그만두겠다는 말과 같다. 즉...그녀는 내가 떠날 것을 생각하며 불안해하는 것이다.
'모험가가 될 생각은 없지만...'
그녀를 떠난다는 점에서 내심 찔려 살짝 눈을 피했다.
'아차!'
그녀가 내가 눈을 피한 것을 바라본다.
"진짜...였어?"
그녀 또한 사람의 거짓말을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깜빡했다. 내 진실과 거짓, 아마도 내 버릇까지 꿰고 있을 그녀에게 자신도 모르게 눈을 피해버렸다.
"왜...왜 떠니?"
내 셔츠 옷깃에 그녀의 손이 잡힌다.
"아,안 떠납니다. 노엘님."
"거짓말...떠날거잖아. 그 때처럼..."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떠났다니? 그렇다면 그녀가 기억하는 나와의 과거의 마지막은 내가 떠난 것으로 되어 있다는 말이 된다.
"노엘님."
그녀를 두렵지만 천천히 안아준 후 부들거리며 떨리는 그녀의 몸을 안정시키기 위해 꽉 안아준다. 만일 그녀가 도망치지 못하게 만든다며 내 발목과 손목을 전부 부숴도...그랬어야 했다. 적어도 상처가 낫게 되었을 때 기회를 엿볼 수 있을테니까.
"제가 결혼하지 못하는 이유는 모험가가 꿈이라서도 있지만..."
다시 머리를 천천히 굴렸다.
"당신과 함께 여행을 가고 싶다는 마음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
그녀의 눈에 눈물 방울이 맺해져 있다. 대체 얼마나 쇼크를 먹은거야...
"제 꿈이 모험가라서 말이죠. 물론 현실 상 제 능력이 그렇다 할 정도인 것도 없지만...세상을 여행하며, 당신과 즐겁게 여러 곳을 보며 살고 싶습니다. 솔직히 이건..."
불가능할 것이다. 그녀는 백작가의 영애니까.
"노엘님의 신분으로 봤을 때 불가능한 일이라...그저 꿈이겠지만요."
"나랑 여행하고 싶은...거야?"
"예. 제 이상형에 정확히 들어맞는 노엘님과 손을 잡고 어디든지 여행을 가고 싶습니다. 어둠 속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서로의 모포를 덮고 있거나, 위험천만하지만 스릴 넘치는 여행과...당신과 손을 잡고 달리며 삶을 생생하게 느끼고 싶습니다."
제발 통해라라는 심정으로 열심히 입을 놀렸다. 솔직히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잘 모른 채 열심히 떠들었다. 그저, 그녀가 납득할만한 변명을 말해줘야 했다. 내 말이 거짓말이 확답이 되었으니, '모험가가 되고 싶다'는 것을 참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녀를 떠나고 싶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거짓이 되고, 그렇게 된다면 '그녀와 같이 모험가가 되고 싶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내가 생각해도 조잡하지만...'
지금 상황에 이 정도의 변명이 최선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렇구나."
다시 점점 밝아지는 그녀의 얼굴. 천천히 표정이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됐다!'
"하지만 모험가 꿈과 노엘님과 함께 한다는 꿈 사이에서 놓고 보자면, 노엘님이 우선이죠. 전 영원한 노엘님의 하인입니다."
이제 표정 관리를 잘해야 했다. 아까처럼 눈이 흔들리거나 해서는 안 된다.
"......"
노엘이 내 눈을 바라보다 이내 안심한 듯 내 품에 더욱 안겨 온다. 허리를 감싼 힘이 더욱 강해진 것을 보니, 쇼크가 어지간히도 컸던 모양.
'큰 일이네.'
어떻게든 무마시켰지만, 대신 그녀를 자극하여 혹시나 하는 경계심을 심어줘 버렸다. 잃은 것이 큰 변명이었다.
'적어도...'
결혼 이야기를 하며, 자연스럽게 키스를 해오는 그녀의 행위를 막아서 다행이라 생각이 들었다.
'키스야...해줘도 되긴 하지만.'
키스를 해줘도 상관이 없다. 오히려 지금 생각해보니 키스를 하고 나서 더욱 안심시켰다면, 도망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을 것 같다.
'젠장할, 이 머저리야.'
겨우 약혼 같은 개념의 키스 하나 가지고 쫄아서 모험가 같은 얼토당토 않는 소리를 해서 이 지경을 만들었다. 이제 나도 성인인데, 약혼 같은 어린 애 장난 같은 키스로 쫄아서 당황하다니...노엘은 나를 자꾸만 어리석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하아...뭐 되는 게 없네.'
그녀 같은 성격이 내겐 제일 큰 위험군에 속하는 것 같았다. 감정적으로 대응하며, 어떤 식으로든 말리지 못하는 거의 무적이라 말할만한 괴물, 노엘은 내겐 천적이나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노엘님."
이 아름다운 괴물을 진정시켜야 했다. 허나, 좀 처럼 내게서 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힘을 줘 날 밀어낸다.
"노,노엘님!"
'푹!'
엎어진 내 등어리 밑에는 그녀의 침대가 있었고, 그녀를 안겨든 채로 침대 위에 누운 꼴이 되어버렸다.
'아...'
다음 날까지 이대로 있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래도...배는 채웠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노력해본다. 소매치기가 제대로 안되는 날이면 배를 곯기 일쑤였는데, 적어도 일류 셰프가 만들어주는 연어구이와 비싼 와인으로 배에 금칠을 했으니...밥 값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노엘님...씻으셔야죠?"
"......"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머리를 내 가슴에 묻은 그녀.
'이런 젠장.'
이틀 연속으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
"일어나셨군요."
눈을 뜨자 보인 것은, 집사의 뒷짐을 진 모습이었다. 어제 마지막 기억 그 상태 그대로 곯아떨어진 모양.
'잘도 잤네.'
괴물이라 말하는 그녀가 안겼는데도 잘만 잠이 왔다. 옷을 갈아입지도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기에...나는 집사에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노엘님께서 억지로 재우신 것이 분명하니 아무 문제 없습니다."
나에게 관대한 집사라, 그 전까지는 친절한 시종장이라 생각이 들었는데...지금은 그저 날 가두는 간수장 쯤 되는 사람이라 인식이 되었다.
"치우셨군요..."
깨진 유리잔과 엎어진 와인병 등등과 얼마 남지 않았던 연어구이와 포크, 나이프와 트레이. 치워야 할 것들이 전부 깔끔히 청소되어 있었다.
"예. 아가씨의 명이셨습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아가씨께선 티르님이 깨어나시는 즉시, 연무장으로 오라는 명이 있었습니다."
"연무장이요?"
급하게 까치집이 되어버린 머리를 정리하며 물었다.
"예. 흠, 일단 씻을 시간을 드릴까요?'
"그래야 할 것 같네요."
어제부터 노엘의 명에 휘둘려 일어나자마자 백작가 본성으로 가고, 정신없이 끌려다니다 침대에 눕혀져 자게 되었다. 제대로 씻지도 못한 몰골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러워보이면 경계를 하는 사람이 많아, 작업을 하기 힘들기 때문에 열심히 씻었었던 지난 날들이 생각났다.
"욕실로 가시죠."
급히 샤워를 마치고 나온 후 앞 바구니에 넣어진 새 하인복을 바라본다.
'생각해보면 이상했지.'
내 치수를 어떻게 알았는지, 정확히 내 몸에 들어맞는 하인복 상하의, 장갑, 구두에서부터 이상함을 눈치채야 했다.
'물론 그리 특별한 체형은 아니지만...'
움직임에 이상이 없을 정도로 딱 맞는 옷. 재질이 좋아서 그런건가 하는 심정으로 의구심도 없이 지내왔던 등신 같은 나날.
'백작가라고 해서 동경심에 빠졌지.'
슬럼가에서 얻은 교훈, 아무도 믿지 말라는 철칙을 어겨버렸다. 아름다운 노엘의 손을 잡았던 것부터, 친절한 집사의 배려에 감동해서 이리저리 끌려다니다보니, 곳곳에 있었던 힌트들을 지나치고 지내왔었다.밥을 충분히 먹고, 숙면과 샤워까지 마치니 내 머리가 지금까지의 힌트들을 빠르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뭐...어떻게 생각해보면...도망치기에는 나쁘지 않는 조건이야.'
도망을 치기 위해선 재빠른 다리만이 우선되지 않는다. 줄을 빨리 끊어버리거나, 잘 숨거나 같은 것은 부수적인 요인에 지나지 않는다. 제일 중요한 것은.
'얼마나 납치범들을 안심시키느냐.'
인신매매 베테랑들이 넘쳐나는 슬럼가. 그 사이에서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한 어린 아이는 필사적으로 그들의 마음을 읽어왔다. 만약 그들의 마음을 읽지 못했다면, 나는 이미 슬럼가가 아니라 광굴에 들어가 광석을 채굴하는 노예가 되어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온 몸에 피멍이 든채로 버려져 들개들과 쥐들의 요깃거리가 되었거나.
'저들은 내가 하인의 의무를 다하려 한다고 생각한다.'
예상범위를 넓혀본다. 대충 지나갔던 흔적들을 가지고 결론을 내려보았을 때, 지금까지 날 납치하기 위해 모종의 작업을 쳐왔단 힌트들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몸에 딱 맞는 하인복에...내 이름을 듣곤 날 오랜만에 본 듯 행동하던 노엘.
[너, 이름이 뭐니?]
굳이 가방을 훔치려던, 소매치기에게 이름을 물어볼 필요가 있었을까? 관심이 가는 대상이라는 전제 하에 그 이야기는 가능해진다. 다른 가능성이 있긴 했다. 첫 만남부터 내게 호감을 보여서 같은 그런 가능성...동화 속에 나오는 첫눈에 반해버린 이야기는 동화니까 사람들이 열광하는 법이다.
'모든건...이유가 있다.'
더 차분히 머리를 굴려본다.
[거짓말을 아니네...티르가...맞아.]
노엘의 말이 기억났다. 그녀는 날 오랜만에 봤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날 가지고 장난질을 쳤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트릭이 되는 셈이었다.
'납치범들이라면...'
아는 사람인척 하며, 접근하는 수단을 잘 사용한다. 그녀가 날 아는 것이고 추억이 있는 지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으니 제외한다. 그러나, 그녀가 날 오랜만에 봤다는 말이 거짓이고, 그녀가 의도적으로 내 접근을 허용시켰다라고 한다면?
[자, 네가 노린 내 가방 안에 있는 것들이란다.]
이 때를 캐치해야 했었다. 소매치기가 노렸던 가방을 쏟아서 내 죄책감을 가중시킨다? 굳이 내 값어치를 따져본다면 그 안에 있던 팬던트 하나도 되지 않을 것이다. 흙바닥에 훼손되며 값이 깎여나갈 비싼 보석들을 가지고 내게 굳이 죄책감을 심어줬다면? 그래서 내가 하인으로 고용되게 틈을 만들어줬다면?
'젠장할...'
이야기가...더럽게도 들어맞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내 이름을 물어서 아는 척을 하며 희망을 주었다. 난 기억하지 못하지만, 오랜만에 본 악의가 없는 아가씨...그리고 준비한 가방에서 꺼내지는 보석들로 내 눈과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고 살 길로 하인이 되는 것을 제시했다면? 노엘은 내 성격을 파악하고 면밀히 준비해온 사람이란 뜻...
'그리고 집사의 행동.'
보통 하인이 들어왔을 때 시종장이라면 그의 소재지나 나이, 거주하는 곳을 살핀다. 과거 이력 또한 듣고 알맞는 작업에 배치해 놓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전속 하인이 된 내게 아무 것도 묻지 않았으며, 마치 날 알고 있다는 듯 배려한 것들이 생각났다.
'그래...알겠어.'
그들은 날 미행하고 있었다. 혹은 주도면밀하게 납치 작업을 진행시켜 왔다는 것을 사실화해야 한다.
'그렇다면...'
점점 딱딱 맞물리는 추리들. 점점 퍼즐의 사라졌던 조각들이 나타나서 맞춰지는 기분이 들었다.
'만약...내가 그 날 시장가에서 소매치기를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그래서 노엘이 그 근방에 있었다고 한다면...그래서 그녀의 가방을 내가 털 수 밖에 없게 만들려면, 내 이동경로를 파악해야 한다.
'잠깐...작업물...그러니까 노엘을 지목한 것은...제퍼스 그 자식...'
제퍼스 녀석이 늦게 일어났다고 하며 나타났었는데, 뭔가 겸연쩍은 부근이 있었다. 자주 늦는 녀석이었지만, 그럴 때마다 칭얼거리며 '아 오늘은 좀 쉬면 안될까?'라는 말과 함께 어디가 아프다는 둥, 재수가 없다는 둥 투덜거려야 했다. 그런데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엄지로 노엘을 가리켰었다.
[뭐, 아침에 사람들이 많을 줄 누가 알았냐.]
[내가 입이 닳도록 말 안했냐? 이번 시장터엔 그...백작가 영애가 돌아와서 북적일거라고.]
[하아암!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나.]
[아침이 아니면 사람들이 눈에 핏발이 서서 작업 감시하는데 제대로 안 된다고.]
[뭘, 그렇게 따지냐. 어차피 낮잠 시간이 가까워져서 사람들도 꽤 노른해졌을거야. 그러니 오히려 괜찮지 않겠냐?]
[미친...아침 정신 못 차리는 시간이 우리 제일 큰 대목인거 몇 번이나 말해줬어? 하아...됐다.]
[그래서 그런데, 저 쪽 어떠냐?]
그와 했던 이야기들이 맴돈다. '백작가의 영애'가 돌아와서 북적거린다는 나의 말에, 과도하게 하품을 했던 녀석. 그 땐 아무 생각 없이 넘어간 그의 의도적인 행동이 거슬려졌다.
'그리고...'
[예예. 그럼 첫 스타트는 티르님께서 뽑아주시려나?]
돈 욕심이 꽤 있던 녀석이...내게 선수를 양보한다? 아무리 늦게 왔어도, 둘은 그런 선례가 없었던 사이였다. 이상한 점과 의도적인 행동...
'이 새끼!!!'
만약...내 주위에서 날 제일 알만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누굴까? 그리고 나에 관련된 확실한 위치와 동선을 누설할 수 있는 자를 가정해 본다면?
'제퍼스!!!'
내 과거를 노엘이 알고 있다는 점은 아직 풀리지 않았지만, 만약 날 가지고 노엘이 납치극을 펼쳤다면? 그 때 제일 일등 공신이 될 수 있는 사람. 내게 신용도가 있으며, 작업물을 추천해줄 수 있는 사람...
제퍼스. 그 녀석 뿐이었다.
'제퍼스가 날 배신을?!...아냐! 그 새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상했던 낌새. 전에 같이 작업쳤던 한슨과 오트밀러가 날 배신 때리고 도망쳤었다. 그런 그들이 욕심을 부리며 도적 길드의 작업 거리에서 작업을 친 것이 걸려 반병신이 된지 일주일이 지난 날...
[혼자서 작업해?]
소매치기를 하러 뒷 골목에서 서성거리다 잡혔던 손목. 제퍼스는 내가 어떻게 혼자였단 것을 알고 있을까? 그리고, 아무리 친화력이 강해도 모르는 슬럼가의 범죄자에게 넉살 좋게 말하는 놈은?
'없다.'
지금까지 18년 동안 만나봤던 괴짜 중 제퍼스가 제일 특이했다 생각했던 이유가 바로 그의 넉살 때문이었으며, 마치 그는 내가 혼자 작업을 하는 것, 아니, 애초에 내가 소매치기범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하루 이틀 작업을 한 것도 아닌 난 평범한 사람인 척 연기하는 것에 이골이 났었다. 제퍼스는 내가 어떻게 소매치기인지 알았냐를 묻자 대답했다.
[동업자끼리는 다 알지.]
그 때부터 그를 의심했어야 했다. 내 추리가 맞다면, 그를 통해 장장 4년을 날 감시하고 다녔단 사실이 된다. 마지막까지 의심을 지우지 않아 거주지는 끝까지 숨겼지만...
'내가 제퍼스와 헤어지고 가는 길에...미행이 붙었다면?'
그리고 백작가에서 영입할 정도의 인재가 날 미행했다면, 금방 내 집은 손쉽게 위치가 탄로났었을 것이다.
'아...'
4년을 두고 같이 작업했던 제퍼스가 첩자라는 사실이 기정사실화가 된다면...
'나는 이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함정에...걸릴 수 밖에 없었겠지...'
내가 스스로 올 때까지, 그들은 빠져나갈 수 없는 깊은 함정을 파낸 것이었다. 3일을 먹지 못하고 있었으며, 노엘과의 일들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미처 캐치하지 못했던 부분들...생각이 정리되면서 동시에 분노가 끌어올랐다.
'젠장할!!!!'
소리치지 못한 내 욕설이 마음 속으로 터져나왔다. 욕탕의 수증기가 피어올라 떨어진 물방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내 귓가에 울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