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하아아..."
들뜬 그녀의 신음. 참지 못하겠다는 숨소리와 함께 그녀가 내 목에 키스를 한다.
"이러시면..."
"가만히 있어."
부드럽게 속삭이며, 그녀는 천천히 내 머릿결을 따라 갈색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티르..."
내 이름을 불러준다. 그녀는 날 가진 정복욕과 함께 멈추지 않을 것 같은 욕망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천천히 슬립을 벗기 시작했다. 달이 조명처럼 그녀를 비추고, 서랍 옆에 놓인 등불이 그녀의 속옷 차림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장식해주었다.
"노엘님..."
"티르...티르...티르...티르!"
도망치고 싶었다. 아름다운 광경이지만, 아라크네의 거미줄에 걸린 먹잇감처럼 모든 정기를 빼앗기고 미라처럼 변하게 만들 서큐버스처럼 그녀의 탐닉은 애정이 아닌 쾌락과 또 하나의 절망인 것 같았다.
"안돼..."
비참하게도 그녀의 새하얀 머리카락에 속은 듯 내 아래가 점점 올라오기 시작한다.
"하아..."
그것을 느끼는지 천천히 그녀가 날 올라탄채로, 애무하듯 바지 위로 움직인다.
"저,저는 노엘님의 것이 맞지만 노엘님은 소중한 분입니다!"
급하게 이 순간이 잘못된 것임을 외친다.
"내가 소중하니?"
예쁜 장난감을 어루만지듯, 그녀는 내 턱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네,네! 소중합니다! 그래서, 노엘님은 몸을 좀 더 소중히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왜?"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한 그녀의 표정.
"그야, 노엘님은 데커드 백작가의 영애님이시고...저 같은 비천한 소매치기에 하인과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높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있잖아."
다시 그녀의 숨결이 귓가에 들려온다.
"널 위해...지금까지 아껴온거야."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그녀는 대체 왜 날 가지고 이렇게 다가오는 것일까.
"그게 무슨..."
"기억나지 않아도 돼."
천천히 그녀가 내 하인 복의 검은색 조끼를 벗겼고, 그 뒤 와이셔츠의 버튼식 단추를 구멍에서 떼어낸다.
"내가 얼마나 이 순간을 기다렸는지 아니?"
모른다. 그래서 두렵다. 그리고...원초적으로 그녀가 너무 무서웠다. 작은 초식 동물을 가지려드는 은빛 괴수. 그녀는 내 눈 앞에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그런 독사과 같았다.
"노엘님, 제,제게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시간?"
멈칫한 그녀.
"네! 저 또한 노엘님이 아름답지만, 제 기준으로는 노엘님과 이제 만난지 이틀 밖에 되질 않았습니다!"
"흠."
급히 변명을 만들어낸다. 다행히 노엘은 내 단추를 벗기는걸 멈췄다. 가파르게 커졌다 내려가는 내 가슴에 손을 올린 그녀. 은빛 머리카락이 내 가슴결을 스친다.
"왜?"
"네?"
그녀의 질문을 이해할 수 없다.
"기다렸는데, 이 순간이 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참고 기다렸는데, 왜 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니?"
"아,아니..."
애초에 나는 그녀를 모른다. 그런데 그녀는 기다렸다고 말한다. 그 사이의 불협화음이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답답함이 내 가슴에 맴돌았다.
"티르, 18살. 어릴 때 몬스터들에게 부모를 여의고, 슬럼가에서 살아왔으며 소매치기를 전전하며 만난 동업자는 다섯 명. 버트슨, 엘리, 한슨, 오트밀러, 제퍼스."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버트슨은 소매치기를 하다 맞아 죽었고, 엘리는 마법적 재능이 보여 마법사와 같이 잿빛 마탑으로 향했지. 한슨과 오트밀러는 도적 길드의 영업장에서 욕심을 부려 칼에 맞아 폐인이 되서 일을 그만 뒀고. 제퍼스는..."
아직 살아있는 나의 동업자였다.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 것 같니?"
궁금했지만, 지금 그녀에게 물어볼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목에 칼날을 겨눈 것 같은 소름이 돋는 감각.
"소피아...10살 때부터 함께한 첫사랑이자 모험가로 떠났지. 같이 하고 싶었지만, 제대로 된 실력이 없어 도적 길드에 들어가고 난 뒤 모험을 함께 하려 목표를 세웠고."
"어,어떻게..."
"그 더러운 귀축이 떨어져나가서 정말 다행이야...그리고 엘리는 잿빛 마탑에서 살고 있으며...다음 호감이 있던 여자...괜찮아. 지금 넌 내것이니까, 난 관대한 주인님이니 이해할 수 있어."
"으윽!"
그녀가 잡고 있던 손목으로 힘이 더 쥐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그런데, 첫사랑이라서...그런건가. 그 소피아 년이 있던 제과점에 다니네?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거니?"
소피아의 어머니께서 하시는 제과점. 나는 비로소 그녀가 날 전부 알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모험가 일을 하다 돌아올 것을 생각하는거니? 모험가들은 언제나 몸을 함부로 굴리지. 지금쯤 다른 동료들의 밑에서 배를 내주고 있을거잖아? 그런데 그녀를 추억하니?"
"......"
"난 너의 주인이며, 그리고 너만이 가질 수 있는거란다."
천천히 그녀가 자신의 브레지어를 벗고 있었다.
"자, 이제 궁금증은 해결되었니?"
오히려 더욱 갈증이 날 정도로 궁금증이 피어나왔다. 어떻게 날 잘 알고 있으며, 나마저 까마득한 엘리나 다른 소매치기 동업자들의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을까. 대체 그녀는 누구이며, 날 왜 기다렸다 말하는 것일까.
"마녀..."
나도 모르게 그녀는 마녀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후훗!"
웃음을 터트린 그녀. 그와 동시에 그녀의 브레지어가 벗겨지며 하얀 살결의 가슴이 튀어나온다. 배를 타는 선원들이 제일 조심해야하는 세이렌이 이런 모습일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
"난 마녀가 아니란다. 그리고, 소피아 그 년이 말했지? 최고의 검사가 되어서 돌아오겠다고?"
두근대는 심장을 멈춰야했다. 허나, 그녀는 놓아주지 않을 정도로 날 옭아매고 있었으며, 그녀의 코가 내 코와 가까워진 것을 느꼈다.
"그 때...너는 좋다고 말했어. 그렇다면 티르...네 이상형은 강한 검사라는거네?"
그녀의 손날. 그것이 한 번 휘둘러졌을 때 슬럼가의 공포였던 바스타드 양아치들이 동시에 목이 베어져나갔다.
"어떠니? 나는?"
최강, 아니...내 기준에서는 최악의 공포스러운 검사였다. 살인귀, 마녀, 그리고...
'죽음.'
첫 날, 다른 여자와 말을 걸었다는 이유로 손가락으로 손목을 부러트렸다. 그리고 알 수 없을 정도로 보이는 저 깊은 수렁같으며 반짝이는 눈. 그녀의 손이 점점 내려가며 내 바지 아래까지 닿으려 한다.
"저,저는 노엘님을 잘 모릅니다."
그 말에 반응한 그녀.
"저 또한 노엘님을 알아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최대한 머리를 굴려 변명을 지어냈다. 소매치기를 하며 걸렸을 때를 대비해 사람들에게 읊었던 변명들. 그 노하우를 최대한 살려야 했다.
"날 알고 싶니?"
"네, 무척. 노엘님을 알아가고 그 뒤 서로 안다는 것에 행복감을 느끼며 함께 하고 싶습니다."
"아...티르. 내 사랑스러운 아이. 얼마나 더 사랑스러운 말로 날 감동시킬거니?"
볼에 키스를 하는 그녀. 가슴에 그녀의 가슴이 닿자 아래는 나도 모르게 올라가고 있었지만, 마음은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노,노엘님과 함께...하루를 하는 것은 더 없는 영광이지만...더 와,완벽한! 그런 순간으로 함께하고 싶습니다."
"아아! 티르!!!"
있는 힘을 다해 안겨드는 그녀. 겨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사,산건가?'
같이 함께, 그리고 영원히 함께. 그 순간을 종속시키는 하룻밤이 될 수 있다. 아니, 불안한 내 감각으로 봤을 때 그녀는 날 절대 풀어주지 않는 그런 괴물이었다.
"오늘은 가 보겠습니다."
"안돼.♡"
웃으며 그녀가 내 볼에 키스를 한다.
"알아가고 싶다면, 같이 자야지?"
오늘...잠은 다 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아."
뜬 눈으로 세우다, 겨우 새벽이 되어 침침해진 눈을 감았었다. 눈을 떴을 땐 이미 해가 중천에 뜬 느낌.
'두 번 연속 지각인가...'
백작가에 온 뒤로 지각을 밥 먹듯이 하는 것 같다. 집사에게 좋은 이미지가 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일어나셨습니까?"
이미 노엘은 사라졌고, 눈 앞에는 집사가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트레이가 있었고, 그 위엔 물 잔이 쥐어져 있었다.
"이,이건..."
급하게 노엘의 방에서 잔 사실에 대해 변명을 하려고 했었다. 허나, 집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테이블에 트레이를 올려두고 말을 잇는다.
"옷을 정갈하게 입으시고 나오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아가씨의 스케쥴이 있으니 말입니다."
"여,영애님은 어딜 가셨죠?"
집사는 내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가씨께서는 당신이 누구와 대화를 하든 이름을 부르시길 원하십니다. 그러니, 노엘님이라고 말씀해주시길 바랍니다."
다른 하인들에게도 내가 노엘을 이름으로 부른다는 사실을 알린 모양이다.
"...네."
"아가씨께서는 이미 아침에 나오셔서, 외출 준비를 마치셨습니다. 오늘은 주인 아씨와의 오후 티타임을 가질 예정이므로, 바로 채비를 갖추시길 바랍니다."
"주,주인 아씨라면 노엘님의 어머님이신가요?"
살짝 말을 멈췄던 집사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가씨를 낳으신 분은 아닙니다."
'아.'
말 실수를 한 기분이 들었다. 귀족가의 백작이라면 처첩이 한둘이 아닐 수도 있다.
"아시는게 좋을 듯 하군요. 현재 만나는 분은 본래 노엘님의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처가 된 분이십니다. 그 분의 아드님은 커틀 데커드이며, 주인 아씨의 이름은 엘리자 데커드입니다. 이름은 외워두시길."
"예..."
"어지간해서는 둘 사이의 대화에 끼시지 않으시는게 좋겠지만, 오늘 대화는...피치 못하게 당신이 끼어들 수도 있겠군요. 부디 몸 조심하시길."
집사의 말을 끝으로 나는 급하게 채비를 갖춰 노엘이 기다리고 있다는 정문을 향해 달릴 수 밖에 없었다.
.
"런치는 먹지 않았는데 괜찮아?"
걱정하는 노엘의 첫 마디.
"괘,괜찮습니다."
"그래도 배고플텐데."
다른 이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난 이 순간 노엘이 날 걱정하는 모습이 너무 과도해서 이상한 소문이 나질 않길 바랄 뿐이었다. 왜냐하면 지금도 날 걱정하듯 턱을 쓰다듬고 있었으니까.
"가자."
익숙하다는 듯 손을 내미는 그녀의 손을 잡고, 마차에 오른다. 이곳은 백작가의 내성 중 하나로서, 노엘 데커드 즉 그녀만이 살고 있는 외성이라고 한다.
'어째서 가족들과 따로 사는거지?'
본래 백작의 아버님, 즉 전 백작이 홀로 여유를 즐기려 놔뒀던 영지 내의 별장 같은 개념의 성이었는데 어느샌가 노엘이 살고 있게 되었다고 한다.
[아, 참고로 그것에 대한 궁금증은 가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집사의 참고 조언. 백작가라도 알 수 없는 그런 알력다툼이 있을 수 있으니, 넘어가기로 했다.
"티르."
"네?"
"티르."
"노엘님. 말씀하시죠."
"후훗, 티르."
계속 이름을 말하고 있는 노엘.
"...예. 노엘님."
"하아아...티르."
다시 목을 끌어안는 그녀.
"노엘님. 지금 외출 중이시지 않습니까? 레이디라면..."
"그럼 돌아가서는 괜찮다는거지?"
"...아닙니다."
겨우 고개를 저었다. 불만이 가득한지 볼이 빵빵해진 노엘의 모습. 귀엽다고 느꼈지만, 어제 봤던 그 공포스러운 눈을 기억하자 살짝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노,노엘님. 안는 것이라면야...괜찮습니다."
"진짜?"
"예, 대신...그 이상은..."
"날 알기 전까지는 안 그런다는거지?"
지금 그녀가 가족들이 있는 내성에 가는 이유가 설마, 나 때문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직접 노엘이 이야기해주는 것보다, 주변 가족들과 대화하는 것이 더욱 진솔할테니까.
'내가 의심할 것을 알고 있는건가.'
아무리 그녀의 입으로 과거를 말한다 한들, 그것은 그녀의 의견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가족들이 말하는 것이 전부 진실일 수는 없겠으나, 여럿 입에서 나온 말들이라면 신뢰도는 더욱 상승할 수 밖에 없다. 힐끔거리며 노엘이 날 바라보고 있는데, 그녀의 하얀 볼에 홍조가 피어오른 것을 보며 헛기침했다.
"노,노엘님. 그..."
"왜?"
"너무 가깝습니다. 하인과 주인은 거리를 벌려야 한다고...배웠습니다만..."
"흐음, 하지만 난 추위를 잘 타는 체질이라 티르가 날 따뜻하게 해주면 좋겠는걸?"
노엘은 그렇게 말하면서 내 팔짱을 끼고 들어왔다. 의식하지 않는 것인지 그녀의 가슴 감촉이 닿았다. 물컹하는 느낌과 함께 어젯밤 봤던 그 광경이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노엘님..."
"아...티르. 너무 귀여워."
사랑스럽다는 그녀의 표정. 그녀의 눈은 아기 강아지를 보는 그런...표정이었다.
'아 진짜...'
평범한 슬럼가 혹은 시내의 평민 여자가 이렇게 달려들었다면,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위치만큼 그녀와 함께 할 때 내 목이 온전할 확률은 줄어드는 것이 문제. 애초에...그녀가 평범한 신분이었다해도 그녀의 무서운 능력을 보았을 때 도망쳤을 확률이 더 컸지만 말이다.
"여기가 원래 우리 집."
처음 그녀의 성을 봤을 때보다 훨씬 거대한 내성. 거대한 호수 위에 지어진 마법같은 성이 노엘의 집이었다면, 지금 보는 것은.
'엄청나.'
엄청나게 거대한 성이었다. 주변에 깔린 병사들의 숫자하며, 경계를 서고 있는 기사들의 숫자. 그리고 멀리서만 보았던 유명한 데커드 백작가의 성이 내 눈 앞에 펼쳐졌다.
"노엘 데커드님의 입성이오!"
큰 소리를 지르는 마부. 기사가 마차를 막기 위해 내뻗었던 손을 거두고, 크게 경례를 취한다.
"충!!!"
백작가의 가족에게 보일 수 있는 기사의 경례. 문을 지키던 수호기사의 경례를 받으며, 넓은 성의 입구를 마차가 몰고 간다.
'쿠르르릉!!!'
열리는 성문. 그리고 안으로 들어갔을 때...
'우와.'
백작가 가족만이 산다고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건물들이 으리으리하게 깔려있다. 병사들과 기사들의 움직임. 그리고 업무를 보느라 바빠보이는 하인들과 신하들의 발. 노엘 데커드님의 입성이오!하는 소리와 함께 바삐 다니던 하인, 병사들이 경례를 취한다.
"이게...백작가..."
믿기지 않을 다른 세상이 내 눈 앞에 펼쳐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