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른 아침, 마차를 탄 나와 집사는 아무 말 하지 않은 채 교회로 향하는 중이었다.
"이랴!"
마부석의 마부가 열심히 고삐를 몰고, 말들은 힘차게 투레질을 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간 밤에 잠은 잘 주무셨습니까?"
"네,네!"
난 집사가 어제 피워준 아로마 향초를 생각하며, 그가 은근히 자신에게 잘난척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한 일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사람. 집사도 그런 사람인가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덕분에 아픈데도 잘 잘 수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집사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눈초리를 보였지만, 칭찬을 어색하게 받는 사람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리시죠."
꽤 시간이 지나고, 마부가 말들의 속도를 줄이는 것이 느껴졌다. 바퀴의 돌아가는 마찰음이 잦아들고, 완전히 사라졌을 때 급하게 마차의 문고리를 잡고 문을 열었다. 그저, 자신보다 윗줄인 집사가 문을 여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생각했을 뿐이다.
"팔이 성하지 않은데 굳이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아닙니다. 당연히 제가..."
"당신은 아가씨의 사유재산과 같습니다. 전 그저 백작가의 시종장일 뿐이지요. 다친 팔을 한 아가씨의 사유재산이 무리를 해서 상처가 더 심해지게 된다면, 그것은 제 책임일 뿐이니 환자일 때는 환자답게 주변의 도움을 받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집사의 말은 부드러웠으나, 제일 먼저 했던 사유재산이란 말이 귀에 맴돌았다. 그 말은 하인이라기보단 뭔가...다른 그런 느낌이었다.
"아, 데커드 백작가 관리인분께서 오셨군요."
양 팔을 벌리고 환대하는 교회의 인사. 나이가 좀 들어보이는 시스터 복장의 여성이었으며, 집사는 예의를 갖추듯 한 손을 뒷짐을 지고 서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은 무슨 일로..."
"가 내에 환자가 생겨서 말입니다."
"저런...설마..."
집사는 잠시 날 흘려보다, 조용히 웃음만을 지었다.
"들어오시지요. 성트리아 교회는 여러분을 환영하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나 또한 고개를 급하게 꾸벅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치료는 저 쪽에서 받으시면 됩니다."
주말도 아닌데, 꽤 많은 사람들이 들어차 예배를 올리는 것이 보였다. 누군가 가르침을 내리는 것도 아닌데, 보통의 신도로 보이는 사람들이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스스로에 대한 기도를 올리는 것을 묘하게 바라본다.
"자, 환자분은 따라오시지요."
대부분의 교회들은 치료소를 겸하고 있는데, 신의 힘을 다룰 수 없는 보통의 시스터들은 치료소 혹은 고아원을 겸하고 있으며 오랜 시간 동안, 성업을 이룩한 신도는 신의 힘을 받아 상대를 치료하는 힘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이 쪽으로."
여럿 다친 사람들이 다니는 평범한 치료소가 아닌, 더 안 쪽으로 안내를 받는다. 고위층이나 쓸 수 있다는 신의 힘을 쓰는 신부들이 행하는 기적의 힘을 받는 곳. 구호자라는 나무패가 걸린 곳 안으로 들어가니 한 명의 시스터가 놀란 눈으로 날 바라봤다.
"어? 환자신가요?"
"네...그렇습니다만..."
"이 쪽으로 앉으시길 바랍니다. 신도님."
내 생각에는 하인복장을 입은 사람이 이 구호자란 치료실에 들어올 일이 없어서 놀랐던 것 같다. 보통, 값비싼 옷을 입은 귀족들이나 고위 관료, 혹은 기사들이 치료를 받기 위해 오는 곳이지, 나 처럼 평범한 골절상을 치료하기 위해 비싼 성금을 내고 치료를 받진 않으니 말이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네?"
"방명록부를 작성해야 되서 말이죠."
"아...티르입니다. 성은 없습니다."
애초에 고아로 살아와 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익숙하지 않는 직업군을 받은 시스터인데도 금세 베테랑같은 인자한 얼굴로 돌아와 그의 이름을 적는다.
"데커드 백작가에서 오셨나요?"
"네,네...어찌 그걸."
"아! 그...아닙니다."
어떻게 내가 데커드 백작가인 것을 알았을까. 아무 특색도 없는 평범한 검은 하인 복을 입었을 뿐인데 말이다.
"그럼 다친 환부를 보여주시겠어요?"
붕대를 천천히 풀고 부어오른 손목을 보여준다.
"흠...예. 다행히 뼈가 상한 곳은 없는 것 같네요."
그녀의 손에서 하얀 빛이 쏟아지더니, 그 손으로 몇 번 내 손목 주위를 훑다가 입을 여는 그녀. 이게 말로만 듣던 신이 주신 힘이라는 것일까.
"근육과 인대가 놀란 것 뿐이고, 뼈는 깔끔하게 어긋나서...가만히 둬도 괜찮을 수준이네요."
어떻게 하면 뼈를 깔끔하게 엇나가게 할 수 있을까.
"그런가요..."
"손목을 이리로."
그녀가 천천히 내 손목에 손을 맞잡는다. 천천히 그녀의 손에서 나오던 하얀 빛이 내 손목을 감싸고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챙그랑!!!!'
그 순간, 밖에서 나온 깨지는 소리. 평범한 유리잔이 깨지는 것도 아닌, 거대한 뭔가가 떨어져 박살이 나는 그런 소리였다.
"무슨...일인가요?"
덜덜 떨고 있는 시스터가 안으로 들어오더니, 눈 앞에 치료를 하던 시스터에게 귓속말을 한다.
"아..."
사색이 되버린 그녀의 얼굴.
"죄송합니다. 일단 치료는 이 정도까지 하고, 다른 신부님을 붙여드리지요."
"네,네?"
일단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 남자 신부가 급하게 들어와, '다친 환부는 손목이라고 하셨죠?'라는 말을 하며, 손목을 잡고 치료를 해주기 시작했다.
"다 됐습니다."
신부의 말을 마지막으로, 난 구호자의 방에서 나올 수 있었다.
"무슨 일이었나요?"
집사가 다가왔기에 물어본다. 집사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안심하라는 듯 웃음을 지어보였다.
"별 것 아닙니다. 그저, 제대로 상의가 되지 않아 일어난 문제일 뿐이지요."
"...네?"
"당신에겐 이번 일은 문제가 없을 겁니다."
그 말에 갑자기 노엘이 생각나며, 소름이 돋았다.
'설마...'
집사는 전보다 급하게 달려오는 나이든 시스터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시스터."
"아,앞으론 이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맹세드립니다."
"예. 부탁드립니다."
서둘러 교회를 나오며, 둘은 마차에 탑승했다.
"......"
"얼굴이 많이 안 좋아보이시는군요?"
좋을리가 없지 않은가? 집사의 말과 행동, 그리고 시스터들의 반응. 그리고 크게 뭔가가 깨지는 소리까지.
"뭔가 이상한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흠, 안심하시지요. 오늘 일은 저희 쪽의 잘못이 아니니까요."
무슨 잘못이냐 묻고 싶었지만, 더 캐묻지 말라는 듯한 그의 굳게 닫힌 입에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둘은 그 뒤 아무 말 없이 백작가로 돌아온다.
"아가씨께 올릴 아침입니다만...상처를 치료하러 갔으니 늦어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아가씨껜 늦은 아침이라 브런치 메뉴로 바꿨다고 말씀드리면 이해하실 겁니다."
집사는 내게 트레이를 권해주었다. 이럴거면 다른 하인들에게 아침 메뉴를 가져가라고 보고하는 것이 맞지 않았나 싶지만, 전속 하인의 의무라 말할 것 같은 집사의 뻔한 대답을 예상하며 트레이를 받아들었다.
'설마, 교회에서 시스터가 잡은 손 때문에...'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어제 하녀들과 대화를 한 것은 이 가내에 사람이라면 조금만 살펴도 알아낼 수 있는 사실일 것이다. 허나, 교회에서 시스터와의 치료는 집사만 조용히 한다면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집사는 마차에서 내릴 때부터 내 앞에 계속 서 있었으니, 노엘은 그 사실을 알 지 못할 것이다.
'똑! 똑!'
유난히 문을 두들기는 주먹이 무겁기만 하다.
"들어오렴."
천천히 트레이를 가지고 안으로 들어간다.
"노엘님...브런치 가져왔습니다. 제가 교회를 다녀오느라...아침을 전해드리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알고 있으니 괜찮아."
웃는 그녀. 그녀는 하필이면 어제처럼 하얀 시스루 슬립을 입고 있는 채였다.
'부끄럽다고 말해줘야 할까...'
전속 하인 주제에 주인에게 음심을 부린다 생각할 수 있다. 조심스럽게, 그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그저 기계인 것처럼 그녀의 테이블에 트레이를 올려놓는다.
"......"
눈 앞엔 어제 보지 못한 검은 실크 소재의 블루종 드레스였다. 간간히 외출을 자주하는 아가씨들의 주머니를 털기 위해 주워들은 지식으로 그것은 분명...아가씨들의 활동복이라 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드레스였다. 그게 왜, 트레이를 놓는 테이블 옆 의자에 걸려 있을까.
'주름...'
도적 생활을 오래 해서 나는 그 드레스가 사용한 흔적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어제까지, 그녀의 옷은 하얀 계열의 레이스 드레스와 지금 입고 있는 하늘색 시스루 슬립 뿐...한 번도 그녀는 블랙 블루종 드레스를 입은 적이 없다.
"이번에도 같이 먹을래?"
"...예."
거부할 수 없었다. 트레이 안에는 우유와 비싸다고 알려진 해외에서 들어온 수입품인 커피, 그리고 베이컨과 에그타르트, 몇 가지 과일이 있었다.
"손목은 다 나았니?"
"네,네! 다 나았습니다!"
"교회에서 잘 치료를 해준 모양이네."
웃으며 그녀는 왼 팔목을 지긋이 바라본다.
"앉아."
옆 의자를 내어주는 그녀. 나는 재빨리 그 자리에 앉아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앞으로 치료는 교회에 연락을 하면 신부가 출장 오기로 했어."
"네?"
"교회에 갈 필요가 없단 말이야."
나는 그녀가 아침을 주지 않고 늦게 브런치를 줘서 화가 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하기엔 그녀의 표정은 맑고 무표정하기만 했다.
"네..."
"안심했니?"
"네?"
"시스터들은 어땠니?"
가슴이 쿵 하고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제, 여성과 조금이라도 만났다간 어떻게 되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농담이나 비유가 아니라 진짜 뼈가 욱씬욱씬한 감각. 말 한 마디에 왼 손 뼈가 아려왔다.
"......"
"이번은 노카운트니 걱정마렴."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눈 앞에 걸쳐진 검은 블루종 드레스. 그녀가 따라온 것일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만약 그녀가 스스로 미행을 했다면?
'아,아니야. 분명 지레짐작일 것이야.'
그녀는 미리 준비한 블루종 드레스를 몇 번 입어보며 사용한 흔적을 남겼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눈 앞에 의자에 걸쳐두며 날 시험하는 것일지 모른다.
'어떻게 대답해야 하지?'
고도의 심리전에 걸린 것 같은 기분. 도박을 할 때 포커페이스가 중요하다고 하던 고주망태가 된 폐인 할아범의 연설이 생각난다.
'진정해. 진정...'
그녀의 눈치를 살핀다. 그리고 노카운트란 말에서 용서를 해준다는 말이 될 수 있지만...이 말을 그대로 믿다간 어떤 결과가 될 지 모르기에...
"그...교회에서 신부님께 치료를 받았습니다."
"응?"
"시스터분들과는...아무런 일도 없었습니다."
"거짓말."
그녀의 눈이 날 바라보고 있다. 어제 봤던 그 소름이 끼치던 눈빛. 그 눈이 날 휘어삼킬 듯, 그리고 목을 조르는 거대한 검은 뱀처럼, 보랏빛 보석같은 눈이 날 경직시켰고, 그녀의 실크색 머리카락은 아라크네의 거미줄마냥 날 옥죄어 오는 것 같았다.
"그,그..."
"난 다른 사람들의 거짓말은 괜찮아."
천천히 그녀가 내 왼 팔을 잡는다.
"그런데, 네가 내게 하는 거짓말은 용서할 수가 없어..."
꺾인다, 부러진다. 아픔이 밀려올 것이라 생각했다. 후회를 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죄송합니다!!!"
다시 눈을 떴는데, 그저 손목에 그녀의 손이 올라가있을 뿐, 아무 짓도 일어나지 않았다.
"베이컨 좋아하니?"
그녀의 손에 들린 포크에는 베이컨이 들려 있었다. 평화로운 늦은 아침. 그녀는 한 손으로 내 손목을 잡아주고 있었으며, 난 그녀의 포크질에 따라 베이컨을 맛 보는 그런...화창해 보이고 평화로운 브런치였을 뿐이었다. 식사를 끝내고 트레이를 반납한다.
"흠, 오늘 아가씨께서 외출을 하시니 시종으로 따라가주시길 바랍니다."
집사의 말이 귓가에 들린다.
"...네."
"다행이군요."
뭐가 다행이란 말일까. 집사는 물끄러미 내 손목을 바라보다 자리를 떴다.
.
"가자."
노엘이 웃으며 내게 손을 내민다. 에스코트를 해달라는 그녀의 말. 수 많은 하인과 기사들이 보고 있는 와중 부끄럽다는 듯 나는 고개를 숙인다.
"노,노엘님. 다른 이들도 보고 있습니다."
"전속 하인이 날 에스코트 해주는데 무슨 상관일까?"
"...네."
올려진 그녀의 손을 맞잡고 그녀를 마차로 안내한다. 그녀는 입었던 흔적이 보이는 블랙 블루종 드레스가 아닌, 하얀 계열의 아치형 티아라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신부같다.'
결혼식에서 귀족 영애들이 입을 법한 신부드레스를 입은 것 같은 그녀.
"왜 빤히 보니?"
"아,아닙니다. 영애...아니, 노엘님."
아까 힘차게 이럇소리를 내던 마부는 지금은 숨도 쉬지 않는다는 듯 열심히 말만 몰고 있었다. 마부석과 마차 안을 연결하는 문걸쇄도 걸어잠그고 아예 안을 신경쓰지 않겠다는 그런 느낌. 집사인 시종장과 노엘의 신분 차이가 크니 대우가 다를 수 있다 생각이 들었다.
"가보고 싶은 곳은 있니?"
"아,아니요."
"전에 살던 곳은?"
"네?"
"전에 살던 언덕의 슬럼가 촌에 들러야 하지 않니?"
그 순간 나는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그런...올가미에 걸린 새같은 그런 기분을 말이다.
"그걸...어떻게..."
그녀가 웃는다. 여신처럼, 혹은 보석처럼 아름답게.
"왜 그럴까?"
장난을 친 개구쟁이가 놀리는 듯 쿡쿡거리며 웃는 그녀의 모습은...날 공포에 몰아넣기 충분한 또 하나의 예술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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